"맛키, 이게 뭐야?"
거실 선반 위에 낯선 장식품이 자리잡고 있었다. 세 마리의 원숭이를 나무로 조각한 익숙한 모양새다. 각각의 원숭이는 눈을 가리고, 귀를 가리고, 입을 가리고 있다. 세 원숭이. 어느 곳이든 관광지의 기념품 가게에 가면 하나쯤은 있는 것.
"하나쨩네 사무소 사람 중에 하나가 여행을 다녀왔대. 기념품이라고 주던걸."
본래는 하나쨩이 받은 선물이지만, 원숭이라면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하나쨩이 말하는 바람에 결국 마키오에게 소유권이 넘어왔다는 이야기다.
"아직도 원숭이로 기억하는 건가~ 하긴,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고작 작년 겨울의 일이다. 어느덧 날씨는 제법 따뜻해져 얇은 옷을 꺼내야했지만, 숫자로만 세보면 고작 몇 개월. 하지만 많은 것이 변했으므로. 두 사람의 관계도, 이 거리도. 더욱이 렌은 더 이상 휴대폰의 자판에 의지하지 않고도 말을 하게 되었으니까. 봄을 맞이하여 수술을 거친 후, 렌은 회복기의 끝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도 부드러운 것만을 먹으면서.
"맛키… 슬슬 뭔가 씹고 싶은데."
그러나 마키오는 웃는 얼굴로 거절할 뿐이다. 다 나으면 고기를 먹으러가자고 살살 달래는 말만 하면서. 그러면 렌 치고는 상당히 부루퉁한 얼굴로, 고기를 다져넣은 죽을 숟가락으로 휘휘 젓는다.
"맛키, 요즘 너무 강요만 하는 거 아냐?"
농담조로 투덜거리며, 렌은 다시 죽을 먹기 시작한다.
계기는 사소해도, 한번 떠올린 어떤 생각이 쉽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가 있다.
문득 생각한다.
물 속에 남은 앙금처럼 풀어지지 않은 것이 있다. 힘껏 사랑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근본적으로 너와 나는 다른 인간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애정으로 포장하면 기꺼이 눈을 가린다는 것이 인간사의 불가사의다. 그러나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불안한 것은 의지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헤치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파헤친 무덤은 티가 나기 마련인데도.
하바타케 마키오는 궁금했다. 나는 어디까지 간섭해도 돼?
너는 집 한 구석에 자리를 내주고, 마음 한 구석에도 자리를 내주었는데. 가끔씩 그건 한 구석이 아니라 전체 같다는 생각이 들고만다. 토라사와 렌은 한 구석이든, 전체든, 딱히 구분하지 않을 것이다. 한 구석이라고 정해놓은 것은 하바타케 마키오 본인의 강박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차라리 우리가 하나였으면 좋겠어.
하바타케 마키오는 자신이 피곤하게 거리를 재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이라도 스스로의 영역을 침범하면 날카롭게 반응하기 마련이고, 하바타케 마키오는 두렵기 때문에 그 영역을 침범하려 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타인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너와 나는 다른 인간이기 때문에.
타인과 이렇게 가까워진 것은, 그리고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한 것은 처음이라서, 조금도 실수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차라리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집어삼켜서 하나가 되면 좋겠어. 둘이서 그렇게,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은 채로. 아늑한 어둠 속에서 어떤 것도 침범하지 못하게.
괴물이 되었다고 생각한 이후로, 목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렇다면 삼켜라.
미약한 달빛이 금속 면을 비춘다. 반사된 빛이 시퍼렇게 날이 선 끝을 다듬는다.
어디서도 밝히지 못한 욕망을 뱀의 꼬리가 부추긴다. 그건 마치 괴물이 된 것 같아 혼란스러운 마음이었다. 글쎄, 혼란스러운가? 사실은 누구보다 진실된 욕망을 찾고 싶었잖아. 머릿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언제나 사회의 일원이었다는 것은 사실 누구보다 욕망을 잘 숨겼다는 것이다. 쿠츠나기들이 모여 한밤중의 칼부림이 일어났을 때, 그때는 정말 즐거웠다. 평소에 '선 밖의 욕망'을 절제하고 살았기 때문에 흥분이 가라앉고나자 죄책감이 찾아왔지만…
사실은 알고 있다. 그것은 죄책감이라고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단순히 평소에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된다고 배웠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느끼는 어떤… 희열.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온다. 욕망에 솔직해져봐. 애매하게 굴지말고. 사실은 정말 원하고 있잖아?
머릿속의 목소리는 어느새 생각과 섞이고, 하나가 되어 욕망을 종용한다. 이르게 잠이 든 동반자는 깊은 숨소리를 내며 방 안에서 자고 있었다. 할 일은 단순하다.
그러니까 나는, 단지 너와 섞이고 싶을 뿐이야.
토라사와 렌은 칼날을 비스듬히 세워 하바타케 마키오의 목에 가져다댔다.
얇은 핏줄기가 새어나오는 순간 정신이 든다. 어느새 눈을 뜬 하바타케 마키오가 눈을 크게 뜬 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나는…"
고요한 방 안에서 토라사와 렌은 습관처럼 변명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입 안에서 말은 흩어지고, 방 안에는 서로의 숨소리만이 들린다.
무언가에 홀린 느낌이다. 무슨 생각을 했었지? 되짚어가다보면 들리는 것은…
"렌 군…"
……들렸어? 하바타케 마키오가 부끄럽다는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뗀다. 토라사와 렌은 깨닫는다.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목소리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뱀은 기분 나쁘게 웃을 뿐이다. 가까운 사이의 '머리'끼리는 서로의 생각이 흘러들어오거나 섞일 때도 있지. 그런 말을 속삭여주며. 그건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깊고 커다란 욕망이라, 압도당했던가. 혹은 공감하고 공명했던가.
마키오가 앓는 소리를 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는 게 있다.
그러려던 게 아니었어. 같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있으면 좋겠어. 렌 군의 생각을 모조리 알게 되면 좋겠어.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도 않아도... 모든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 부끄러워. 바보같아. 하지만... 그래도 렌 군이 알게 되어서 기뻐.
토라사와 렌은 홧홧한 열기를 그대로 전해받으면서, 묵묵하게 구급상자를 가져와 소독을 하고 거즈를 붙여준다.
"맛키."
서로가 통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둠 속이지만 서로의 마음 속이 훤히 보인다. 그러니까 렌은 눈을 마주친 채 손을 잡을 뿐이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입을 열어.
직접 말해줘.
네가 하고싶은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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