햣키모노가타리
百鬼物語
제1구 : 제행무상 (第一句 諸行無常)
옛 무사시국(武蔵国)의 땅에 원숭이들이 사는 산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미후산(獼猴山)이라 한다. 그곳에 털이 검은 원숭이가 하나 살았는데, 몸집이 크고 힘이 세며 속내를 읽는 능력이 있어 원숭이들의 왕으로 불렸다. 원숭이왕은 때때로 부하 원숭이들을 데리고 민가나 여행자들이 지나는 길목에 출몰하여 금품과 음식을 빼앗고는 했다. 원숭이왕이 생각하는 바를 읽고 그대로 따라 말해주면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소식을 들은 지나가던 승려 한냐(般若)가 꾀를 내어 원숭이왕의 버릇을 고치고자 했다…
등장인물
마키오 (牧雄)
별칭은 미후왕(獼猴王), 미후산 원숭이들의 왕.
태어날 때부터 몸집이 크고 힘이 세었으며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까지 있어 손쉽게 원숭이들을 다스리는 우두머리가 되었다. 주로 주변 민가에 내려와 도적질을 하고 여행자들을 습격하여 금품을 갈취하여 주변 마을에 악명이 자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나가던 승려, 한냐가 꾀를 내어 원숭이들의 버릇을 고치고 매일같이 설법을 하자, 원숭이왕은 그 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너는 이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으니 그것은 육신통(六神通)의 하나인 타심통이다. 부끄러운 짓을 많이 한 너 또한 수행하면 깨달음을 얻고 보살이 될 수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고쳐먹으면 어떻겠냐’는 한냐의 말에 마음을 다잡고 불법을 공부하다가, 출가하고 승려가 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런 마키오에게 승려 한냐는 ‘얏키(奕愧; 크게 부끄러워하다)’라는 법명을 주고, 어깨에 경문을 적어준다.
대개 원숭이왕, 미후왕이라고 불렸지만, 속명은 하바타케 마키오다.
한냐 (般若)
어리다고 할 정도로 젊은 승려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행각승이다. 히에이산(比叡山)의 작은 사찰에서 왔다고 한다.
윤기 있는 검은 머리에 홍안의 미소년으로, 말이 없고 과묵한 성품이다. ‘한냐’라는 이름은 법명으로, 속명은 이부키 나츠히코(伊吹 夏彦)라고 한다. 오미국(近江国) 왕의 딸이 낳은 사생아라, 어릴 적부터 출가하여 사찰에서 생활하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무사시 부근을 지나가다가 미후산의 원숭이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생각으로 꾀를 하나 낸다.
한냐가 길목에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기 시작하자 원숭이들은 냄새를 맡고 찾아와 한냐에게 승려가 고기를 먹어도 되냐며 땡중이라고 조롱하며 고기를 갈취하려 한다. 원숭이왕이 부하 원숭이들과 고기를 전부 먹어치우고나자 조용히 있던 한냐가 그 고기는 병에 걸려 죽어가던 짐승의 시체인데 그것을 전부 먹었으니 너희는 꼼짝없이 죽을병에 걸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곱게 빻은 곡물가루를 몰래 원숭이들에게 뿌리자 원숭이들이 기침과 재채기를 하며 요란을 피웠다.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며 원숭이들이 한탄하자 한냐는 그것을 낫게할 치료법을 안다며, 매일같이 산에 나는 밤을 따다가 그 껍질만 달여 마시고 무릎을 꿇고 자면 된다고 한다. 밤 알맹이는 필요없으니 사람들이 사는 마을 쪽으로 버리고, 무릎을 꿇고 자는 것은 힘드니 잠이 잘 오게 법경을 읊어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원숭이들은 무급으로 밤을 따다가 껍질까지 까서 평소 괴롭히던 마을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무릎을 꿇은 채 설법을 듣게 되었다.
그 중 원숭이왕 마키오가 설법에 관심을 가지자, 마키오를 잘 설득하여 불교에 귀의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본래 자신은 수행을 위해 돌아다니던 행자이니 이만 떠나겠다고 하며 마키오를 두고 이후를 기약하며 또 다른 곳으로 사라진다.
제2구 : 불에 탄 저택 (第二句 焼屋敷)
옛 오와리국(尾張国)에 이름높은 가인(歌人)이 살고 있었다. 비파 연주와 노래로 유명했던 그는 눈이 보이지 않았는데, 때문에 보는 것을 동생에게 맡겨 세상살이를 알곤 했다. 그러나 장난이 많던 동생으로 인해 가마에 숯을 너무 많이 집어넣은 그는 그만 집째로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그 불 탄 폐허에서 때때로 우는 소리 같은 비파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니, 사람들은 그것이 가인의 원혼이 울부짖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지나가던 얏키(奕愧)라는 승려가 그 이야기를 듣고 불에 탄 저택 앞에서 경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집에서 기이한 소리와 함께 천장이 무너져내려 승려를 덮치고 작은 동자가 데굴데굴 굴러나와 제발 그만하라고 애원하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을 보니 이 집의 자시키와라시(座敷童子)였다…
등장인물
토라사와 렌 (虎沢 蓮)
불에 탄 저택 폐허에 박혀 살고 있는 두건으로 입을 가린 원귀.
옛날 옛적 불타 죽은 이름높은 가인의 동생으로, 그때 형과 같이 불에 타 죽었으나 자신의 잘못으로 죽이고만 형에 대한 슬픔과 자기자신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인해 성불하지 못하고 폐가에 남아 떠도는 원령이 되었다.
입가에 두른 두건 밑과 옷 아래 오른쪽에 화상 흉터가 남아있으며 화재 당시 애타게 소리쳐 형을 부른 탓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갈곳 없는 원망 때문에 폐허가 된 저택에서 노래없이 구슬픈 비파 소리를 연주하며 폐가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일으켜 내쫓는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긴 시간이 흘렀음을 체감하고는 어느 틈엔가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자시키와라시를 내버려두는 등 슬픔에 빠지다못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이대로라면 각종 잡귀와 요괴로 득시글한 귀신의 집이 될 것이 자명해보였지만, 지나가던 승려 얏키가 경문을 외워 잡귀들을 퇴치하기 시작하자 그것을 공격으로 인식한 렌은 원귀 특유의 급격한 감정 변화로 분노에 차서 저택에 들어온 얏키를 죽이려든다.
얏키 (奕愧)
제1구에 나왔던 원숭이 승려. 꽤 오랜 시간 착실히 수행하여 많은 덕을 쌓은 모양인지, 둔갑술을 비롯한 각종 법술에 능해져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게 되었다. 부분적으로 꼬리나 털이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사람이라고 여겨줄 만한 모습이다.
저택 앞을 지나가다가 기운이 흉흉해보여 경문을 외워 잡귀를 퇴치했으나, 그로 인해 저택 주인의 분노를 맞게 되었다. 한참을 날아오는 물건을 쳐내며 대치하다가 두건 아래의 화상 흉터를 보고 사토리의 능력으로 원망과 슬픔을 읽어낸다. 여차저차 과정을 거쳐 렌을 진정시키고, 성불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한다.
나나시 (名無)
불에 탄 저택 폐허의 자시키와라시. 이름도 없고 어떻게 태어났는지 기억도 없다.
겁이 많고 소심하여 주로 벽장에 틀어박혀 숨어있는 것이 주요 일과다.
자시키와라시(座敷童子)는 본래 사람이 사는 집안에 살며 복을 불러오는 요괴인데, 사람을 기피하여 도망치다가 있는 것이라고는 원귀 하나뿐인 폐가에 눌러앉았다. 사람은 없지만 생각보다 저택의 주인인 원귀가 무서웠는데, 안 그래도 원귀가 불행해보이는데 자신이 이 집을 나가면 또 불행이 오기 때문에 또 그것을 염려하여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얏키가 저택에 찾아와 잡귀 퇴치를 시작하자 본인은 영향 받지 않았지만 저택의 주인인 렌이 분노하여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공포에 질려 벽장에서 뛰쳐나와 얏키에게 제발 그만해달라고 울면서 빌었다.
렌이 무심결에 쥐어준 여우 가면에 무척 고마워하며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자주 쓰고 다닌다.
제3구 : 달의 공주 (第三句 月姫)
옛날 옛적 사누키국(讃岐国)에 늙은 나무꾼 부부가 살았다. 어느 날 나무꾼 영감이 산에서 포대기에 싸인 여자아이를 하나 주웠는데, 아이가 없었던 부부는 그 아이를 딸로 삼아 애지중지 길렀다. 딸을 키우기로 하자 부부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서 보물이 나온 곳을 그대로 파보니 금은보화가 나왔다. 하늘의 뜻이라 생각한 나무꾼 영감은 딸을 데리고 도시로 가 귀하게 키우기로 했고, 부부의 노력처럼 여자아이는 아름다운 천하절색의 미인으로 자랐다. 아이는 사랑스럽고 아름답다는 뜻의 ‘카와이히메’라고 불리며 고귀한 사내들에게 구혼을 받게 되었지만, 번번이 구할 수 없는 물건을 결혼예물로 가져오라며 구혼을 거절했다…
등장인물
카와이히메 (愛媛)
나무꾼 부부의 딸. 산에서 주워왔다고 하는 여자아이로, 아이를 얻은 이후로 재산이 늘어나 도시로 와 귀족에게 시집 보내기 위해 딸을 곱게 키웠다. 그러나 산과 들에서 뛰놀며 살던 아이는 괴로워했고, 사랑스럽고 아름답다는 뜻의 ‘카와이히메’라는 이름을 얻고 천하절색으로 이름을 날려 곳곳에서 구혼자들이 찾아와도 결혼하기 싫어하며 번번이 구할 수 없는 물건을 결혼예물로 가져오라며 쫓아냈다. 미카도(일본 왕)까지 관심을 가져 그녀에게 찾아오려던 때, 어떤 구혼자가 선물로 가져온 이름없는 도공의 칼을 잘못 만졌다가 베인 후로 칼의 츠쿠모가미에게 몸을 빼앗겼다.
그러나 사실 카와이히메의 몸은 달에서 살던 월궁 선녀가 지상에 내려온 환생이었고, 달에서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 월궁의 선녀는 괴로워하며 칼에게 몸을 내어준 채 마음 속 깊은 곳에 잠들었다.
스케토요(祐豊)
미카도의 신하, 우대신의 식객이다. 순전히 바둑의 고수라는 이유만으로 귀족 집안의 식객이 되었다.
우대신은 현 미카도의 중궁(왕의 정실부인)을 배출한 가문의 가주로, 산책을 하다가 느티나무 밑 그늘에 시끌시끌하게 사람들이 모여 있어 다가가보니 차례차례 도전자를 여유롭게 쓰러뜨리는 젊은이가 하나 있었고, 평소 바둑을 매우 즐기던 가주는 그자에게 도전했다가 패배한 후로 집에 식객으로 데려가 그와의 대국을 취미로 삼았다.
가주가 이름을 물으니 츠키노 스케토요(槻 祐豊; 느티나무의 스케토요)라 하였는데, 언제나 우산을 들고 있어 ‘언제나 우산’이라는 뜻의 ‘이와카사(磐笠)’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예의를 차려 칭할 때는 츠키노 이와카사 스케토요(槻 磐笠 祐豊)라 불린다.
가주가 미카도가 ‘카와이히메’라는 미인에게 정신이 팔려있다며 중궁을 걱정하자, 이와카사는 자신에게 좋은 수가 있다며 카와이히메를 만나러가게 해달라고 한다.
사실 스케토요는 인어의 고기를 먹고 불사가 된 옛날의 사람으로, 그로 인해 순간과 영원을 관장하는 신 사쿠야히메에게 잘못 걸려 여신의 종복으로 살고 있었다.
사쿠야히메는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선 서왕모의 분신으로, 꽃과 같은 아름다움과 지고 시들어버린 흉측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죽음의 신이었다.
스케토요는 사쿠야히메가 예전에 월궁의 선녀가 훔쳐간 불사약을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산에서 내려와 떠돌다가, 우연히 ‘카와이히메’라는 아름다운 여자의 구혼자들이 이 세상의 온갖 진귀한 귀물을 가져다바친다는 말을 듣고 카와이히메에게 찾아간다.
카와이히메가 월궁의 선녀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스케토요가 찾아갔을 때 ‘진짜’ 카와이히메는 요도에게 몸을 빼앗겨 불사약을 어디에 숨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남은 것은 요도의 의식 뿐. 일단은 월인들이 카와이히메를 데려가기 전에, 스케토요는 히메를 데리고 도망치기로 한다.
인베노 이치지쿠(斎部 一字)
카와이히메에게 이름을 지어준 관리 겸 신관. 인베(斎部)는 관직명이다. 이름을 명명함과 동시에 관례를 치르고 축하연회를 열면 카와이히메의 미모에 대한 소문이 멀리퍼질 것이라고 조언해준 사람이기도 하다.
카와이히메를 도와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히메의 앞길을 막으려들기도 하며, 카와이히메에게 찾아오는 구혼자들을 비웃기도 하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제4구 : 야만바 (第四句 山姥)
옛날 옛적 보탄(牡丹; 목련)이라고 하는 아가씨가 살았다. 보탄은 아름답고 반짝이는 것을 좋아했는데, 부모가 사온 꽃을 조각한 비녀가 마음에 들지 않자 비녀의 꽃에서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어 부모를 찔러 죽였다. 얼마 후 장신구 상인이 보탄의 집에 들렸다가 보탄이 어머니의 고운 비단 옷을 입고 아버지의 옥패를 달고 있는 것을 보고 이를 수상하게 여겨 집안을 몰래 살펴보았다가 죽은 부모를 발견하고 대경실색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마을 사람들이 보탄의 집에 찾아와 돌을 던지기 시작하자 보탄은 마을에서 도망쳐 산에 들어가 비구니 행세를 하며 살았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분노하자 그 원한으로 요괴가 되었는데, 늙은 할멈의 모습과 아름다운 젊은 여자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취할 수 있어 그것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속여 잡아먹었다…
등장인물
하나사에 (牡丹)
하쿠나마미치산(白生道山)의 야만바 또는 야마히메라고 불리는 요괴.
본래 작은 마을에 부모와 함께 살던 아가씨였으나 장신구가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부모를 죽이고 마을 사람들에게 들키자 산에 들어가 비구니 행세를 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원한으로 인해 요괴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제4구 야만바에서는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을 하고 젊은 청년 슌이치를 홀린다. 슌이치는 의무까지 내려놓고 하나사에와 함께 산에서 살겠다 다짐하지만, 그렇게 다짐하는 순간 하나사에는 돌변하여 슌이치를 죽인다.
슌이치 (瞬一)
카스가노 슌이치(春日 瞬一)라고 하는 귀족 집안의 자식이지만, 천성이 게으르고 불량한 일에 자주 손을 대어 집에서 내놓은 자식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보다못한 슌이치의 아버지가 절에서 공덕이라도 쌓으라며 내쫓지만, 슌이치는 수행도 하지 않고 절의 잡일꾼 아이를 하인으로 부리며 빈둥대며 놀러다닌다. 그러던 중 산 아래에 핀 목련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여자를 보고 ‘왜 꽃을 보며 즐기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느냐’며 말을 건다. 그러자 여자는 쓸쓸한 얼굴을 하며 ‘이 꽃 때문에 부모가 죽었는데 어찌 보고 즐기기만 할 수 있겠느냐’라고 대답한다.
슌이치는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에 잠시 놀랐다가, 곧 좋은 기회라고 여겨 여자에게 같이 꽃구경을 하자며 꼬신다.
자신의 이름을 하나사에라고 밝힌 여자는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끈질긴 슌이치의 구애에 마음을 열어준다. 처음은 가벼운 추파였지만 슌이치는 하나사에와 함께 할수록 점점 빠져든다. 그렇게 집안과의 연락까지 끊고 하나사에와 산에서 살겠다 다짐하는 수준에 이르는데, 그 순간 하나사에가 돌변하여 슌이치를 칼로 찔러 죽인다.
나츠히코 (夏彦)
슌이치가 묵던 절의 잡일꾼 아이로, 무척이나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 얼굴을 보고 시샘한 슌이치가 종처럼 부려도 묵묵히 따를 뿐이라 슌이치는 금방 흥미를 잃지만, 나츠히코는 계속 슌이치를 수행한다.
슌이치가 하나사에를 만나러 갈 때도 묵묵히 따라와 슌이치를 모시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오미국 왕의 딸이 낳은 사생아로 야마타노오로치의 아들이라 사실 하나사에가 요괴라는 사실을 진작에 눈치채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후 슌이치를 죽인 하나사에에게 야마타노오로치의 꼬리뼈로 만들었다는 검, 쿠츠나기(沓薙剣)의 조각을 건네주며 ‘그대가 적절한 곳에 쓸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요지의 말을 한 후 바람처럼 사라진다.
제5구 : 감로의 샘 第五句 甘露の池
마루이케(丸池)라고 하는 연못가에 쥰(醇)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연못에 빠져 죽을 뻔한 후로 귀신이나 요괴 같은 허깨비를 자주 보곤 하였는데, 남들이 뒷말을 할까 두려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이는데 말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고생이 심한 일이라, 쥰은 아무에게도 말을 못해 골병이 들고 말았다. 그래서 대나무를 베어 바구니를 만들어 파는 일을 하여 먹고 살던 쥰은 가슴앓이를 하다가 아무도 없는 대나무숲 한가운데 땅을 파고 허심탄회하게 견귀(見鬼)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원하게 비밀을 털어놓고나니 골병은 나았으나, 그날 밤부터 집에 ‘술꾼(酒師)’이라고 적힌 패를 허리춤에 단 요괴 하나가 들어와 태연하게 먹고자기 시작했다. 게다가 밤에 잠에 들 때마다 집안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술판을 벌이니, 쥰은 도저히 잠에 들지 못했다…
등장인물
쥰 (醇)
대나무 바구니를 만들어 파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연못에 빠져 죽을 뻔한 이후로 귀신과 요괴가 보이게 되었다. 남모를 비밀이 생겨 마음고생을 하다가 아무도 없어보이는 대나무숲에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으나, 그것을 엿들은 요괴가 쥰의 집에 들어와 살면서 쥰을 골탕먹이기 시작했다. 골탕먹이는 방법은 다름아닌 못본 척 하는 쥰의 앞에서 태연하게 먹고 자며 밤마다 잠들지 못하게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었는데, 당연히 쥰은 잠들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이윽고 참다못한 쥰이 요괴에게 ‘잠을 잘 수 없으니 그만해주십시오.’하고 한마디 하자, 요괴는 ‘여태까지 내 말을 몰래 엿들었구나!’ 하고 도리어 화를 내기 시작한다. 쥰이 제발 나가주십사 하고 싹싹 빌며 용서를 빌자, 요괴는 ‘나는 술을 좋아하는데, 바다 너머 때 모르는 향기로운 열매가 자라는 섬이 하나 있다. 그 섬에 세상에서 가장 향기롭고 달콤한 술이 솟아나오는 샘이 있다더라. 그 술을 감로주(甘露酒)라고 하는데, 그것을 가져오면 집에서 나가주겠다’라고 말한다.
쥰은 황망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감로의 샘을 찾으러 떠난다. 어떻게 찾아가야할지 막막한 그는 가장 먼저 근방에서 아는 것이 많아 선생 노릇을 하는 ‘나카마에’라는 사람을 찾아가는데, 그는 ‘감로의 샘이라면 들어본 적 없지만, 때 모르는 향기로운 열매라면 비시향과(非時香果)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비시향과가 자라는 섬은 이와미국(石見国)의 아와시마(淡嶋) 해변에서 대나무 줄기를 튕기면 그 반동으로 날아갈 수 있다고 들었다’라고 거들먹거리며 말해준다. 그러면서 길을 안내해줄 테니 자신을 데려가라고 한다. 그렇게 쥰은 나카마에와 술꾼 요괴를 데리고 길을 떠나 다양한 요괴와 사람들을 만난다.
사케시 (酒師)
갑자기 대나무꾼 쥰의 집에 들어앉아서 매일 밤마다 시끄럽게 떠들며 술판을 벌이는 이상한 요괴로, 이마에 뿔이 돋아 있으며 허리춤에 ‘술꾼(酒師)’이라고 적힌 패를 차고 있어 ‘사케시’라고 부른다. 요괴에 대해 박식한 나카마에의 말로는 누라리횬이라는 요괴라고 하지만, 누라리횬은 말 그대로 잡히지 않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라, 쥰은 나카마에의 말을 믿지 않는다.
밤마다 시달리던 쥰이 참다못해 못본 척을 그만두고 한 마디 하자,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그동안 자신의 말을 훔쳐들은 것이냐고 화를 내며 쥰에게 들러붙어서 감로주가 솟아나오는 샘을 찾아내라며 행패를 부린다.
쥰과 나카마에가 길을 떠날 때 뒤따라온다. 하지만 평소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쥰을 골탕 먹일 때만 튀어나와 존재감을 과시한다.
사실 제 3구의 등장인물 스케토요를 종복으로 부리는 여신 사쿠야히메의 동생으로, 부모에게 내쫓긴 아이를 사쿠야히메가 거두어들여 정성껏 키웠다. 하지만 생과 사를 관장하는 신이자 개화와 낙화의 양면성을 가진 사쿠야히메는 봄의 시작에 태어나 겨울의 끝에 죽고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겨울의 끝에 사케시의 앞에서 죽어버리고 만다.
사케시는 누이로 모시던 사쿠야히메의 죽음에 슬픔에 빠져 술을 퍼마시며 포악하게 굴기 시작했는데, 그때문에 얼굴이 붉어지고 이마에 뿔이 돋아 귀신의 형상이 되었다. 그러자 모두가 그런 사케시를 ‘슈텐도지(酒呑童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쥰의 집에 들어와 쥰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은 전부 그 행패의 일환이다.
나카마에 나리 (中眩 殿)
마루이케 근방에서 선생 노릇을 하는, 요괴에 관심이 많은 글 깨나 읽은 듯한 한량이다.
하나부사 쥰이 감로의 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가자, 함께 가자며 따라붙지만 무엇 하나 할 때마다 엄살을 피우고, 심지어는 요괴에게 납치되기도 한다.
해졌지만 본래는 고급스러웠을 만듦새가 촘촘한 옷을 입고 귀한 지필을 가지고 있어, 몰락한 귀족으로 여기고 모두가 ‘나리’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끝내 감로의 샘이 있는 곳까지 함께 가고 싶어했으나, 섬에 갈 수 있는 사람이 둘밖에 없다고 하자 포기하며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준다.
히메 (碑孁)
제3구에 나왔던 인물로, 카와이히메의 몸에 깃든 이름없는 요도의 츠쿠모가미다. 그저 히메라는 이름을 쓰며, 함께 길을 떠났던 스케토요와 여전히 함께 다니며 여러가지를 구경하고 사람을 베고 있다.
도중에 나카마에 나리와 만나, 베어볼까 하다가 엄살이 너무 심해 귀찮게 구니까 한 대 친다. 하지만 그대로 나카마에가 쓰러지자, 들고 온 것에 불과한데 납치라고 오해받는다.
유우토 (祐豊)
제3구에 나왔던 인물로, 스케토요라는 이름을 바꿔 유우토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요도 히메와 함께 다니며, 히메가 나카마에를 들고 오자 깨워서 불을 쬐게 해준다. 곧 나카마에를 쫓아 찾아온 사케시를 보고 상사나 마찬가지인 사쿠야히메가 소중히 기르던 아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나,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게 제일이라며 히메와 조용히 떠난다.
제6구 : 쑥의 섬 (第六句 艾ヶ島)
…이어, 신관에게 대나무 줄기를 얻어온 쥰은 사케시를 데리고 아와시마 해변에서 대나무를 튕겨 눈깜짝할 새에 녹빛의 섬에 다다른다. 숲으로 층층히 둘러쌓인 섬은 구불구불한 길과 동서남북을 알 수 없는 강이 흐르는 곳이었는데, 사람도 요괴도 도저히 갈 곳을 알 수 없으니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갈 곳 없이 막막하니 울음소리를 따라가자고 하여 둘은 위와 아래를 알 수 없는 고개를 여럿 넘어 섬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있는 것은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여자였는데…
등장인물
쥰 (醇)
제5구로부터 이어지는 내용으로, 여정을 계속하던 도중 나카마에의 말대로 이와미국의 아와시마 해변에 도착한다. 하지만 아와시마 해변 근처에는 죽순조차 보이지 않았고, 결국 근방을 수소문하던 도중 한 신관을 만나게 된다. 소노신이라는 이름의 신관은 이 근방에 있던 대나무숲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여 괴이하다고 하여 대나무를 전부 태워버렸다며, 남은 것을 두 개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은 셋이고 대나무는 둘이라, 결국 나카마에와 헤어지게 된다.
사케시 (酒師)
제5구로부터 이어지는 내용으로, 여전히 행패를 부리며 쥰을 따라오던 요괴는 나카마에를 쫓아내고 대나무를 차지하여 쑥의 섬, 요모기가지마에 쥰과 함께 도착한다. 하지만 방향을 찾기 어려운 섬이기 때문에 갈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여자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는 강가에서 울면서 빨래를 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이름은 시로코라고 했다. 무엇을 빨고 있냐고 하자 죽은 사람의 옷을 빨아 깨끗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는데, 사케시는 그 중에서 사쿠야히메의 옷을 발견하고 울적해하며 화를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로코가 빨래판을 던져 사케시에게 맞추며 그건 사쿠야히메의 옷인데 곧 살아날 사람이라 빨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자, 사케시는 당황하며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 시로코는 사쿠야히메는 겨울이 되면 죽고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나는 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냐며 되물으며, 감로의 샘에 찾아왔으니 사쿠야히메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며 감로주 한 병을 쥐어준다.
히로하라노 소노신 (廣原 惣之進)
아와시마 해변 근처 신사의 신관으로, 대나무숲으로부터 사람의 말소리를 듣는 일이 많아 기이하다며 마을 사람들의 요청으로 대나무를 전부 태워버렸는데, 사실 그 말소리는 쥰이 고향에서 대나무숲에다 대고 외친 말들이었다. 쥰에게 대나무숲으로부터 들은 목소리와 똑같다며 말하며, 대나무 두 줄기를 건네준다.
시로코 (白子)
요모기가시마(艾ヶ島)의 술이 뿜어져나온다는 감로의 샘의 주인.
섬의 이름을 쑥빛 옥으로 만든 선궁(艾琳宮;요모기노타마노미야)이라고 칭하며, 사쿠야히메와는 일종의 동업자로 보인다. 사쿠야히메가 점지한 죽은 사람들의 옷을 빨아 죽은 이들에게 다시 입혀주는 일을 한다.
제7구 : 그림자 여자 (第七句 影女)
셋츠국(摂津国) 왕은 오만함으로 이름 높았는데, 그 위명처럼 아내 스즈카고젠(鈴嘉御前)과의 슬하에 얻은 아들의 이름을 타이요(太陽)라 지었다. 그 오만함 때문에 적이 많아 왕은 아들에게 그림자 무사(影武者)를 붙였다. 그림자 무사는 셋츠국의 미즈오(水尾)라는 마을에 사는 이발사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타이요보다 먼저 태어난 쌍둥이 동생이라고도 하지만 그 진위는 알 수 없다. 그림자 무사의 이름은 츠키히코(月彦)라 하는데, 어릴 적부터 타이요가 사는 방의 뒷편에 있는 작은 별채에서 타이요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것을 배우며 길러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재능과 성취가 심상치 않아, 타이요는 사사건건 츠키히코를 시기하여 괴롭혔다. 하루는 타이요가 별채에 사람을 들이지 말고 츠키히코를 돌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츠키히코가 별채에 돌아와보니 시종이라고는 아무도 없는데 김이 나는 밥과 진수성찬이 상 위에 차려져 있었다…
등장인물
츠키히코 (月彦)
셋츠국 왕의 아들 타이요의 그림자 무사로 길러진 소년.
이발사의 아들인데 타이요와 똑닮아 그림자 무사로 데려다썼다는 이야기도 있고, 타이요보다 일다경 먼저 태어난 쌍둥이 동생이라고도 한다.
타이요가 사는 방의 뒷편에 있는 작은 별채에서 타이요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것을 배우며 자란다. 하지만 그 재능이 출중하여 타이요가 츠키히코를 질투하여 괴롭히고, 어린 츠키히코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고독한 처지를 실감한다. 하지만 타이요의 명령으로 하인을 모두 물린 별채에서 따스한 밥상과 정돈된 이부자리가 나오자, 츠키히코는 이상함을 느끼고 ‘거기 누군가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그러자 장지문 너머로 공손한 여자의 목소리가 ‘네, 있어요.’ 하고 대답하는데, 츠키히코가 자세히 살펴보니 장지문에 고개를 숙인 시녀의 그림자가 비쳐보인다. 츠키히코는 그 시녀가 마음씨 착한 사용인 중 한 명일 것이라 생각하여 후에 은혜를 갚으려 이름을 물어보았더니 장지문 너머의 그림자는 ‘오아키(お秋)’라고 불린다고 대답한다.
츠키히코는 오아키의 성심어린 보살핌으로 쑥쑥 크고, 타이요는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비루먹은 음식만 먹는데도 날이 갈수록 실력이 갑자로 늘어나는 츠키히코에게 두려움을 느껴 그만 충동적으로 츠키히코가 자고 있는 별채에 불을 지르고 만다.
츠키히코가 밤중에 장지문 너머에서 들리는 오아키의 간절한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니 온 방안이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 있었는데, 오아키가 말하는대로 행동하니 금방 별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별채에서 빠져나와도 한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시녀 오아키의 모습은 볼 수 없었고, 더 이상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은 것은 밤중에 환한 빛을 내며 활활 타오르는 불길 뿐이었다.
츠키히코는 불을 끄기 위해 강물을 퍼올리다가 수면에 비친 자신의 형상을 보고 어느새 자신이 귀신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대로 본채로 가 타이요의 칼 ‘히게키리(髭切)’를 꼬나쥐고 타이요를 포함한 본채의 모든 사람들을 베어죽인다. 그리고 까마귀와 같은 날개를 펼치고 그대로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고 하니, 그것을 두고 츠키히코가 ‘카라스텐구(烏天狗)’라는 까마귀 요괴가 되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오아키 (お秋)
‘오아키’라고 불리는 별채의 시녀로, 창문 그림자에서 태어난 요괴.
오직 장지문 너머의 그림자로만 보이는 시녀의 형상으로, 공손한 여자의 목소리로 말하며 그림자 무사로 길러지는 어린 츠키히코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때로는 타이요에게 츠키히코를 대신하여 소소하게 골탕 먹이는 등 요괴지만 츠키히코를 연민하여 헌신을 다한다.
별채 안에서만 그림자의 형태로 보이고 대화할 수 있었으나, 별채에 화재가 일어났을 때 츠키히코를 간절하게 불러 깨우고는 대피시킨 후 별채가 불에 타 전소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츠키히코는 큰 불을 혼자 힘으로 끄기 위해 애쓰며 강물을 퍼올리다가 이미 오아키를 잃었음을 깨닫고 귀신의 형상을 한 채 복수하듯 일가족을 모조리 살해한다.
타이요 (太陽)
셋츠국 왕의 아들. 거만하고 남을 괴롭히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인물로, 츠키히코를 돌을 던지는 과녁으로 삼거나 더러운 물을 마시게 하는 등 열등감에 젖어 츠키히코를 괴롭히지만, 별채에 불을 지른 후 도리어 츠키히코에게 베여 죽는다.
제8구 : 만물상의 차가마 (第八句 よろず屋の茶釜)
고즈케국(上野国)의 엔도(遠藤)라는 마을에 아들만 셋을 둔 부농(富農)이 살았다. 이 부부는 딸을 간절히 가지고 싶어했는데, 셋째마저 아들이 태어나자 근처의 모린지(茂林寺)라는 절에 공양을 드려 딸을 갖기를 바랐다. 그러자 절에서 돌아가는 길목에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 수풀을 헤쳐보니 갓난 여자 아이가 울고 있었는데, 부부는 부처님이 주신 아이라 여겨 그 아기를 데려다가 곱게 키웠다. 아기는 ‘오마유(お眉)’라고 불리는 아가씨로 성장했는데, 집안의 금지옥엽으로 애지중지 자라서인지 어떤 일에도 쉽사리 싫증을 내곤 했다. 하루는 그런 아가씨를 위해 집안 식구들이 마을의 화제라는 행상인을 집으로 초대했다. 행상인은 신기한 물건을 잔뜩 늘어놓았고, 휘황찬란한 물건들을 구경하느라 사람들은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오마유 아가씨는 따분해했으니, 행상인은 그런 아가씨에게 아가씨를 위해 온 집안 식구가 맛있는 음식도, 아름다운 장신구도, 귀여운 조랑말도 가져다주는데 어찌 그리 재미있는 것이 하나 없다는 듯 지루한 표정만 하고 계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가씨가 말하길, ‘나는 사실 둔갑한 너구리다. 예전에 사냥꾼에게 쫓겨 사람아이로 둔갑하였더니 이 집의 부부가 나를 주워다가 길렀다. 그런데 나는 화려한 장신구보다 산과 들이 좋고 맛있는 음식보다 아침이슬이 맺힌 산딸기가 좋으니 어찌 즐거워할 수 있겠는가?’...
등장인물
오마유(お眉)
‘오마유’라고 불리는 아가씨로, 사실은 둔갑한 너구리 요괴.
사냥꾼에게 쫓기던 차에 사람 아이로 둔갑하여 수풀 속에 숨어있었더니 딸을 간절히 원하던 부부가 하늘이 준 선물이라 생각하고 데려다 길러주었다. 너구리는 너구리답게 살고 싶었지만 너구리 요괴라는 것을 들키면 골치아픈 일이 생기고,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나 둔갑하는 법도 잊어버린데다가, 온 집안 식구들이 아가씨를 애지중지하여 걸음 하나 스스로 못걷게 하니 빠져나올 수도 없어 한숨만 쉬고 있었다.
하지만 천운이 따라서 요괴 행상인 오모키의 도움을 받아 차가마로 둔갑하여 답답한 집안을 빠져나온다. 하지만 차가마로 둔갑하고도 다시 둔갑하는 법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해 털이 북슬북슬한 꼬리와 한쪽 다리만 튀어나온 차가마인 채로 오모키의 상자 안에 있었는데, 행상인이 요괴답게 차가마가 된 너구리 요괴를 그대로 요호(妖狐)에게 팔아버린다.
오모키 (面木)
만물상이라고 불리는 행상인으로, 허름한 옷차림에 커다란 상자를 등에 지고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수상한 차림새다. 하지만 안가본 곳 없이 외국을 돌아다녔다고 하며, 상자 속에서 꺼내는 물건은 언제나 손님이 가장 원하는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사실 그 정체는 기이한 힘을 가진 요괴로, 행상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의 형상은 허깨비이며 등에 지고 다니는 상자가 본체이다. 온갖 것을 전부 사들이고 온갖 것을 전부 판다. 물물교환을 선호하며, 때로는 비밀이나 추억도 가치 있다며 가져가곤 한다. 이 요괴가 가져간 비밀이나 추억은 더 이상 떠올릴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사람의 집에 갇힌 너구리 요괴를 차가마로 둔갑시켜 탈출할 수 있게 도와주는 듯 싶었지만, 사실 물물교환이라며 ‘너구리가 둔갑한 차가마’를 대가로 받아갔다.
그후 요호 키츠네비 넨에게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라며 금실로 짠 옷을 받고 차가마로 둔갑한 너구리 요괴를 판다.
키츠네비 넨 (狐火 燃)
금빛 털을 가지고 있는 여우로, 본래 농사와 풍요의 신 이나리의 자식이자 신의 사자이며 미케츠카미(三毛津神)라고 불리는 신령이었다. 하지만 어버이 이나리 신의 말을 어기고 불량한 길로 들어서서 사람에게 해를 입히기 시작하자 요호(妖狐)라고 불리게 되었다. 제멋대로인 성격이지만, 의리와 인정이 있어 요괴와 귀신, 야차들이 그를 따른다. 하지만 이나리 신에게 쫓겨난 이후로 무료함에 젖어 하루하루 빈둥대고 있었다.
만물상 오모키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왔다며 시비를 걸러왔다가, 그대로 그가 꺼내는 물건에 호기심이 생겨 북슬북슬한 너구리 꼬리와 다리 하나가 달려있는 낡은 차가마 하나를 예전에 신의 사자로서 받은 금실 비단옷을 주고 산다.
제9구 : 누에가미 (第九句 鵺神)
때는 카와이히메가 아직 유명한 미인이 아니라 시골 촌뜨기였을 적의 이야기다. 밤마다 궁중에 괴이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중궁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우대신의 딸이 그 불길한 소리에 잠에 들지 못한다며 편지로 호소하자, 우대신은 부리는 시노비 중 하나를 보내 궁중에 들어온 짐승을 잡아오라고 시킨다. 짐승의 이름은 누에로, 검은 연기와 함께 나타나 소름끼치는 울음소리를 내는 요괴라고 하였다. 명령을 받은 시노비, 야츠모는 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밤 궁중에 숨어들어가 짐승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기보다 먼저, 신관 하나가 나타나 이곳은 함부로 외인이 들어와서는 안되는 곳인데, 어찌 들어왔냐고 묻는다. 시노비가 할말이 궁색하여 곧바로 도망치려하자, 때마침 불길한 짐승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등장인물
오오우나바라누시 (大海原主)
신관의 차림새를 하고 한밤중의 궁중에 나타나 시노비 야츠모에게 말을 건다. 신관의 업무로 짐승을 잡으러왔다고 하며, 숨어들어온 야츠모를 궁인에게 알리는 대신 함께 짐승을 보러가자고 한다.
이치지쿠노미코토(一字九命)라고도 불리는 신이며, 요괴 누에다. 본래 궁이 세워지기 전부터 그 자리에 살고 있던 토착신으로, 중앙집권을 위해 토착신들이 지워지면서 그저 요괴로 남게 되었다. 본인은 신이어도 요괴여도 상관없다는 태도지만, 신앙이 사라진 이후로 귀족들과 왕의 권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으로부터 힘을 얻기 시작했다.
야츠모 (奴藻)
우대신 집안의 시노비로, 어릴 적 부모없이 길에 떠돌던 아이를 주워온 우대신 집안이 시노비로 길렀다. 하지만 최소한의 의리만 다할 뿐, 충성심이 보이지 않고 타고난 성품이 자유분방하여 일종의 버림패로 한밤중에 궁궐의 담을 넘게 되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잘 숨어들었으나, 요괴 누에가 그 모습을 발견하고 신관인 척 말을 건다. 직후 도망치려던 순간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 시작해, 낯선 신관의 제안을 따라 울음소리를 쫓아간다.
하지만 막상 괴이한 울음소리의 출처를 찾으니 그것은 짐승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괴롭힘당해 서러워하여 숨죽여 우는 왕의 후궁 중 하나의 울음소리였으며, 중궁의 편지는 그저 빨리 권력에 도움되지 않는 후궁을 죽여없애라는 신호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후궁과 그를 달래고 있는 궁인을 바라보다가, 어떻게 할 거냐는 요괴 누에의 물음에 그대로 임무를 버리고 돌아가지 않고 도망치기로 한다.
나카야마 나카마에 (中山 中眩)
제5구에 나왔던 인물로, 제9구는 과거의 이야기로 보인다.
음양사 집안의 아들로, 고지식하고 학식이 높지만 음양사로서의 소질은 없어 집안의 천덕꾸러기에 불과했다. 타고난 성품이 곧고 굽힐 줄을 모르니 음양사가 되지 않고 다른 길을 찾기보다는 음양도를 열심히 수련하는 것을 선택했는데, 하루는 그를 못마땅해하던 사촌형제가 방구석에서 음양도를 수련한다고 해서 무엇이 도움되냐며 요즘 궁중에 나타나는 요괴 누에를 잡아오면 너를 음양사로 인정하겠다며 나카마에의 화를 돋군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던 나카마에는 그 말을 듣고 무작정 입궁하였는데, 한밤중이 되기를 기다려 누에의 울음소리를 쫓아가자 본래 옷을 만드는 시녀였다가 후궁이 되어 괴롭힘을 당한 여자가 그곳에 있었다. 당황하여 그 자리를 빠져나오려던 나카마에를 후궁이 불러세웠고, 그대로 달래주길 강요당하다가 그대로 발각당하여 집에서 내쫓겨 먼곳에 유배당하고 만다.
제10구 : 귀신 저택 (第十句 お化け屋敷)
옛날 한 마을에 시커먼 집이 하나 있었는데, 예전에 화재가 난 이후로 그곳에 살던 이들이 원귀가 되었다하여 귀신저택이라 불렸다. 그 집에는 예전에 불에 타죽은 원귀 하나와 이름없는 자시키와라시, 그리고 원숭이 승려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집으로 태양과 같은 시커먼 불덩이 하나가 날아들었는데, 자세히 보니 까마귀의 날개를 단 텐구였다. 텐구가 커다란 태도를 꼬나쥔 채로 마당에 서서는 주인을 부르자 겁많은 자시키와라시는 벽장에 숨고 원귀는 가만히 앉아 나가지 않고 무시했으며 원숭이 승려만이 저택으로부터 걸어나왔다. 무슨 일이냐 하니 텐구가 말하길, ‘나는 텐쿠라고 하는데, 이 집의 그림자에 신세지고 싶어 찾아왔다.’ 그러나 원숭이 승려는 신세지고 싶어 찾아왔다면 정중히 부탁하는 것이 예의라며 다툼을 시작했고, 곧 마당에 쇠가 맞부딪히는 병장기 소리가 울리자 저택의 주인이 고개를 내미는데…
등장인물
텐쿠 (天空)
제7구에 나왔던 인물로, 카라스텐구가 되어 떠돌다가 귀신 저택에 찾아왔다.
집이 사라져 모습도 목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된 요괴 오아키가 자리잡을 곳을 찾아다니다가 귀신 저택을 발견하고 알맞은 곳이라 여겨 곧바로 찾아간다. 하지만 잡귀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귀신 저택에는 힘이 강한 요괴가 여럿 모여있었고, 그대로 원숭이 승려와 칼과 석장을 맞대고 싸우다가 저택에 사는 원귀가 저택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고 그만둔다. 이후 저택의 주인의 허락을 받아 오아키의 조각을 내려놓자 저택의 그림자에 그림자 요괴가 녹아들어 다시 오아키의 모습이 나타나 오랜만에 재회한다.
얏키 (奕愧)
제1구와 제2구에 나왔던 인물로, 한참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불에 탄 저택에 머무르고 있다. 근처를 돌아다니며 불경을 외고 설법을 하고 다니며 절에서 일을 돕고 간식거리를 얻어오고는 하며 지내고 있는데, 여전히 저택 내의 자시키와라시는 겁을 먹고 다가오지 않아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어느 날 텐쿠가 나타나 집을 내놓으라고 하자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며 석장을 들어 싸우다가 저택의 원귀가 나타나자 그만둔다. 성불하게끔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점점 저택에 요괴가 늘어가는 사실에 난감해하면서도, 본질이 요괴인 탓에 요괴와 맞부딪히게 되자 기뻐하는 모습도 보인다.
오아키 (お秋)
제7구에 나왔던 인물로, 카게온나라고 하는 요괴다. 집안의 그림자 안에 살며 그림자 그 자체이기에 집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어 텐쿠가 오아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떠돌며 적당한 집을 찾고 있었다. 결국 원귀 렌의 귀신 저택에 자리잡아 텐쿠와 다시 재회한다. 저택에 살게 된 이후로, 아무도 치우지 않아 불에 타 무너진 채 그대로였던 집을 깔끔하게 치우기 시작하여 집이 깨끗해지고, 그에 따라 벽장에 숨어살던 자시키와라시, 나나시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게 된다. 오아키는 방치되어있던 나나시를 돌보아준다.
토라사와 렌 (虎沢 蓮)
제2구에 나왔던 인물로, 저택의 주인이자 원귀다. 저택 내부 한정으로 막강한 힘을 부릴 수 있는 강력한 요괴인데, 여전히 집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나 계속 새롭게 요괴들이 찾아와 들어오니 어쩔 수 없이 변해가는 저택의 모습에 당황스러워한다.
나나시 (名無)
제2구에 나왔던 인물로, 원숭이 승려도 저택의 원귀도 여전히 무서워하며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아하지만, 오아키가 저택에 살게 되면서 저택이 한결 편안해졌다고 느끼는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오아키 옆을 기웃거린다.
제11구 : 신부 옮기기 (第十一句 花嫁運び)
무사시국(武蔵国)에 발이 빠른 청년이 하나 살고 있었다. 청년은 마을에서 이곳저곳으로 물건 옮기는 일을 했는데, 그 속도가 빨라 마을 사람들이 그를 하야시(駿)라고 불렀다. 하루는 청년이 빠르게 달려서 물건을 옮기다가 지나가던 행상인과 부딪혔다. 그 일로 행상인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접시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깨졌는데, 이를 보고 행상인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큰일났다며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청년이 고작 접시 하나인데 왜 그러냐며 물어줄테니 일어나라고 하자, 행상인은 청년에게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접시라며 고개를 저었다. 청년은 안타까워하며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고, 그러자 행상인은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고 하며 청년을 귀족의 집으로 데려갔다…
등장인물
하야시 (駿)
발이 빨라 아시하야타로(駿太郎)라고도 불리는 마을 청년으로, 그 특유의 준족으로 물건을 빠르게 배달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날 행상인으로 위장한 만물상 요괴에게 잘못 걸려, 그대로 수상한 일을 맡게 된다. 결혼식 준비가 한창인 귀족의 집에 숨어들어가 신부가 될 아가씨를 납치해오는 일이었는데, 하야시가 행상인 오모키에게 배달이 아니라 납치가 아니냐고 항의하지만 오모키는 이미 접시를 깨뜨렸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귀족의 집으로 가자, 귀족 아가씨 사쿠라노키미는 결혼하기 싫다며 오히려 하야시를 반갑게 맞이한다. 하야시는 그대로 신부예복을 벗어던지고 남장을 한 사쿠라노키미를 데리고 신부납치극을 실행한다.
오모키 (面木)
제8구에 나왔던 인물로, 요괴 만물상이며 여전히 행상인을 하고 있다. 사쿠라노키미에게 받은 것이 있어 상인 요괴로서 중요한 물물교환의 규칙에 어긋난다며 전전긍긍하다가 발이 빠른 것으로 유명하다는 하야시에게 일부러 부딪혀 싸구려 접시를 깨게 하고 신부를 납치하게 한다. 신부를 납치한 것을 다른 귀족가의 사주라고 위장하려 했지만 부분적으로 실패하여 하야시는 그대로 대역죄인이 된다. 이후 그렇게 된 하야시를 책임지겠다며 만물상 요괴는 하야시를 종자로 삼아 데리고 다니게 된다.
사쿠라노키미 (咲羅君)
본명은 미호(美保)로, 결혼을 앞두고 있는 귀족 아가씨다. 귀족가에서 태어나 귀족가에서 자라 신부수업을 받기까지 했으나, 날이 가면 갈수록 답답함을 느끼고 집을 나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결혼식을 앞두고 어릴 때 같이 들판을 달리던 말이 사고로 죽어버리자, 밖에 나가 자유롭게 살 결심을 하고 귀족가에 찾아온 행상인 오모키에게 접촉하여 거래를 하여 신부 납치극을 꾸몄다.
오베니 (お紅)
납치극의 협력자로, 사쿠라노키미의 시녀다. 행상인 오모키에 대한 소문을 듣고 사쿠라노키미에게 전해준 것도, 어떻게든 오모키를 귀족가에 끌어온 것도 전부 오베니다. 사쿠라노키미의 어릴 적부터의 친구로, 오베니 또한 명망 있는 집안의 자식이다. 어릴적에는 함께 말을 타고 놀았으나, 왕족과 결혼할 정도로 지체높은 집안인 사쿠라노키미는 어느 순간 전혀 하지 못하게 되어 아쉬워하고 있었다.
제12구 : 술래잡기 (第十二句 鬼ごっこ)
오에산(大江山)에 귀신의 왕들이 모여 악행을 저지르고 술을 마시며 연회를 즐긴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귀신들의 악행이 궁중까지도 닿아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니 그들을 잡아 영웅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귀신의 왕들이 모였는데 다툼이 없을 리 없다. 카라스텐구인 호쿠토고젠, 오니인 이자요이마루, 야마토노오로치의 아들이라는 슈텐도지가 서로 내기를 하기 시작했으니 그 종목은 찾아오는 젊은이들에 대한 것이었는데…
등장인물
호쿠토고젠 (北斗御前)
오에산에서 내기를 하고 있는 카라스텐구로, 제7구와 제10구에 나오는 인물이다. 그 사이 요괴로서 위명을 착실히 쌓아 귀신들의 왕을 가린다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다. 거대한 태도를 쥔 채 피를 닦고 있다가, 토벌대가 찾아오자 내기보다는 무참히 토벌대를 도륙하는 것에 더 관심을 보인다.
이자요이마루 (十六夜丸)
오니 두령의 부하로, 그의 대리인으로서 오에산의 모임에 참석했다. 두령의 대리인이라는 이유로 참석하여 상대적으로 점잖게 슈텐도지가 제안한 내기에 참여한다. 토벌대의 사천왕 중 유난히 뛰어나보이는 키타가와노 린타로와 슈텐도지의 제안으로 맞붙었다가 그대로 들고있던 칼이 날아가며 충격을 받는다. 이후 점잖던 태도와는 다르게 오니의 본색을 드러냈다가, 두령의 명령으로 태도를 죽이고 오에산을 빠져나간다.
슈텐도지 (朱天童子)
본명은 이부키 나츠히코로, 제1구의 승려 한냐였다. 이부키 산 근처의 호족의 아들… 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생아로, 아버지는 야마타노오로치다.
거만하고 향락적이며 변덕스러운 성격으로, 많은 귀신을 이끌고 다니며 악행을 저지르며 살고 있는 명실상부 귀신들의 왕이다. 자신을 찾아온 오니 두령과 카라스텐구 호쿠토고젠에게 자신을 죽일 토벌대가 찾아오고 있음에도 연회를 제안하며 토벌대의 젊은이들로 내기를 시작한다.
예전에 1구의 원숭이 승려에게 찾아오라는 말을 남겼으나, 타고난 혈통 때문인지 원숭이 승려가 그를 찾아냈을 때는 슈텐도지라고 불리는 귀신이 되어 있었다.
시호노 쥰페이 (紫帆 順平)
토벌대가 오기 전, 귀신의 왕을 퇴치하러 온 마을의 사내로 마을에서 이발사 일을 하고 있었으나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겠다며 무작정 슈텐도지를 처치하러 왔다. 하지만 슈텐도지에게 무언가를 해볼 새도 없이 그가 하는 말에 홀려 쿠츠나기의 조각을 받는다. 이후 마을에 돌아갔으나 사랑하던 여자는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있었고, 배신감에 쿠츠나기의 조각에 홀려 머리를 자르러 온 여자를 찌르고 만다. 이후 이발소에 대한 괴담이 돌기 시작하자, 다시 슈텐도지에게 찾아가 그의 부하로 들어간다.
키타가와노 시시오 린타로 (北川 獅子王 凛太郎)
귀신들을 퇴치하러 온 무장으로, 토벌에 오면서 이름없던 무장이었던 예전과는 다르게 거센 완력과 무력을 자랑하며 다른 뛰어난 무장들과 함께 사천왕이라는 위명을 얻었다.
뛰어난 실력과는 다르게 스스로는 평온하고 사소한 것을 좋아하는 소탈한 성격이다. 하지만 귀신들을 퇴치하는 손속에는 망설임이 없어 끝내 슈텐도지의 목을 잘라 죽이는 위업을 달성한다.
…라고 생각되었으나, 사실 친척 오빠가 병에 걸려 토벌대에 참여하지 못해 곤란한 상황이 되자 오베니(お紅)라고 하는 아가씨가 남장을 한 채로 대타로 온 것이었다.
제13구 : 스에츠무하나 (第十三句 末摘花)
귀신들의 왕을 죽인 무장이 가냘픈 아가씨였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모두가 감탄하고 미카도까지 시시오노 베니를 장군으로 삼으려고 했으나, 베니는 원하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투구와 갑주를 벗었는데도, 베니에게 오는 혼담이 없었다. 원래 있던 혼담도 사라져, 사람들은 이내 누가 귀신의 목을 자른 여자와 결혼하고 싶겠냐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구혼받지 못한 베니를 사람들은 스에츠무하나(末摘花)라고 불렀다. 그런데 하루는 츠치야마노 유우마라는 사내가 베니에게 구혼을 했다. 드디어 베니가 짝을 만났다며 집안 사람들은 기뻐했으며, 베니도 뛸 듯이 즐거워했다. 하지만 결혼식 전날, 베니는 부엌에서 말린 대추를 훔쳐먹던 고양이와 다람쥐가 한숨을 쉬는 소리를 들었는데…
등장인물
시시오노 베니 (獅子王 紅)
제12구에서 린타로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인물. 토벌대의 사천왕이라는 사실이 들키고, 베니는 장군의 자리도 준다는 왕의 말도 거절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강한 무력으로 소문이 나서인지 혼담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베니에게는 불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어떤 사내가 베니에게 구혼을 해왔고, 알려진 것 하나 없는 집안의 남자지만 베니는 첫눈에 반했으며 베니에게 들어온 유일한 혼담이므로 집안 사람들도 승낙하고 결혼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혼식 전날, 자주 찾아와서 음식을 얻어먹고 가던 고양이와 다람쥐가 부엌에서 사실 자신들은 요괴라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두 동물은 한숨을 쉬며, 그 남자는 유명한 오니이며 베니가 오에산에서 칼을 맞대었던 오니이기도 한데 분명 복수를 하러 온 것이라고 알려준다.
츠치야마노 유우마 (土山 優魔)
갑자기 나타나 베니에게 구혼한 사내로, 알려진 것 하나 없는 집안 출신에, 한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지만 태도도 생김새도 나쁘지 않아서 베니의 집안 사람들은 그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정체는 베니와 칼을 맞대었던 오니 이자요이마루(十六夜丸)로, 그때 당한 것에 대한 복수를 하러 온 것이었다. 베니는 그 사실을 친구인 여우와 너구리에게 듣지만, 첫눈에 반한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다며 이자요이마루와 그대로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첫날밤, 자신의 부하와 동료들을 죽였다며 이자요이마루는 베니를 죽이려들지만, 베니는 이미 결혼식을 올렸으니 안된다며 고양이와 다람쥐에게 들은 오니들의 규칙을 운운하며 이자요이마루를 설득한다. 결국 이자요이마루는 베니에게 세 가지 조건을 걸며, 이것을 다 해낸다면 얌전히 베니의 남편으로 살겠다고 약속한다.
넨 (燃)
제8구에 등장했던 인물로, 본래 여우이나 둔갑술로 고양이로 둔갑하여 차가마였던 너구리와 함께 베니의 주방에 숨어들어 음식을 훔쳐먹고는 했다. 하지만 어느날 베니가 그것을 발견하여 여우와 너구리에게 마음껏 먹으라며 다른 음식도 내어주자, 감동을 받았는지 베니가 이자요이마루에게 속아 결혼하기 전에 말문을 열고 그의 정체와 목적을 알려준다. 하지만 베니가 그래도 결혼하겠다고 하자, 오니들의 규칙을 알려주며 거래를 하라고 하며, 베니가 해내야하는 세가지 조건 또한 너구리와 함께 도와준다.
아이나 (愛奈)
제8구에 등장했던 인물로, 본래 너구리이나 둔갑술로 날다람쥐로 둔갑하여 키츠네비 넨과 함께 베니의 집 부엌에 나타난다. 이자요이마루와 베니를 두고 결혼을 말리기 위해 어울리지 않아(不似合な;후니아이나), 하고 추임새처럼 계속 말하다가, 베니에 의해 아이나라고 불리게 된다. 그 후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스스로를 아이나라고 자칭한다.
제14구 : 월병 만들기 (第十四句 月餠作り)
달에서 월궁의 공주를 데려가기 위해 내려온 이들 중에 옥토(玉兔)가 있었다. 공주를 찾지 못한 지 몇 년이 넘었지만 공주를 찾지 못해 옥토는 달에 돌아가지 못했다. 옥토는 본래 달에서 떡을 만들던 이로, 공주를 찾는 것에 지쳐서 가장 좋아하는 월병(月餠)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월병의 재료는 달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옥토는 가장 먼저 함께 내려온 월인(月人)을 찾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월인의 행방을 알 수가 없어 근방에서 가장 아는 것이 많다는 선생을 찾아갔더니…
등장인물
단야 아키요시 (談谷 彰吉)
달에서 살던 달토끼로, 월궁에서 떡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으나 지상에 간 공주를 찾아오라는 명령에 단체로 궁인들이 내려가게 되면서 달에 가지 못한지 몇 년이 넘었다. 하지만 본업을 하지 못한지 오래되자 좀이 쑤시고 지쳐, 가장 좋아하는 월병을 만들기로 한다. 하지만 월병의 재료는 달에만 있는 것이라, 함께 내려온 월인 중 하나가 재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떠올려 그를 찾기로 한다. 하지만 그의 행방을 도저히 알 수가 없어, 근방에서 가장 아는 것이 많다는 선생, 나카마에를 찾아간다. 그는 정말 아는 것이 많기는 했으나 스스로가 달토끼라고 밝히자 흥미를 보이며 월인을 찾는 과정을 함께하게 해달라고 하였고, 매달리는 그를 떼어놓는 것이 더 힘들어 함께하기로 한다.
나카야마 나카마에 (中山 中眩)
제5구와 제9구에 등장한 인물로, 제5구의 행적처럼 또 다시 신기한 것을 찾는 누군가의 여정에 함께하고자 한다. 하지만 여전히 엄살이 많고 사건사고에 잘 휘말리는 체질인지 단야를 여러번 곤란하게 만든다. 월인을 찾기 위해 아는 사람에게 수소문하여 찾아간 곳은 다름아닌 제2구와 제10구에 나오는 귀신저택으로, 월인은 그 저택에 살고 있는 이름없는 자시키와라시였다.
미카즈키 유이토 (朏 結人)
제2구와 제10구에 등장한 인물로, 그때는 이름없는 자시키와라시라 나나시라고 불렸지만 동향 사람인 단야를 만나자 기억을 되찾는다. 하지만 본래도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인지 오히려 달로 돌아가기보다 이미 정착했고 편안한 곳인 귀신저택에 자리잡고 싶어한다. 단야에게 월병 재료를 내어주며 돌아가달라고 조심스럽게 부탁하나, 공주를 찾으면 당연히 달로 돌아가야한다는 으름장을 듣고 겁에 질려 집안으로 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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