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을 비스듬한 사선으로 깎아 만들었다.¹
1. 못이 들어갈 수 있는 표면이 더 많아진다.
2. 이음매 각각의 접면이 두 배가 된다.
3. 경사면으로는 물이 잘 스미지 않는다. 물은 수직으로 움직이고 가로질러 흐른다.
4. 사람들은 집 안에서 하루의 삼분의 이나 되는 시간을 보낸다. 따라서 이음매와 접합부는 수직으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하중을 수직으로 받기 때문이다.
5. 사람들이 눕는 침대는 하중을 수평으로 받으니까 이음매와 접합부도 수평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지?
별다른 것이 있겠어? 장례는 이제 관습이야. 상조회사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화장이 가장 보편적이잖아. 하지만 뼛가루만 남는다해도 납골당은 싫어. 그건 계속 대여 비용을 지불해야하거든.
사실 돈이 들지 않는 장례법은 없어. 관에 안치해 땅에 묻어도, 그 위에 나무를 심어도… 계속 유지 비용은 나가기 마련이지. 살아있는 것도 아닌데 죽어서도 계속 돈을 써야한다니. 죽음으로 인한 해방이나 자유 같은 건 허상이라니까. 어차피 이 세상은 산자들의 땅이니까.
아, 그래. 나는 이왕이면 바다에 뿌려줬으면 좋겠어. 도쿄에서는 바다가 안보이잖아. 그래봤자 이건 전부 공상에 가까운 희망사항일 뿐이야. 나는 분명 여기 어딘가에 누워 썩어갈테니. 운이 좋다면 까마귀가 먹어치워줄지도 몰라. 걔들이 썩은 고기를 먹는다면.
그러고보니 나츠히코, 너는 어떻게 했더라? 들은 게 없어. 하긴, 너도 알고 있을 리 없지.
…저기, 난 어쩌면 꽤 불운한 사람일지도 몰라.
이제와서 그런 말이냐고? 그야, 스스로의 불운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생각할수록 더욱 불운해지기만 하겠지. 불운은 어차피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감각에 가까워. 정신력이 강하다는 건 가끔 우둔하다는 말이기도 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나을 때가 있어.
하지만 지금은 말해도 되지 않을까. 여기엔 너와 나밖에 없잖아.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대화하는 것만큼 실존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지. 죽어본 적은 없지만 난 사후세계는 안믿거든. 내가 아직 너랑 이야기가 통한다는 건 그래도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 아닐까.
……아, 잠깐 생각 좀 하느라. 잠에 들지는 않았어.
사실 원한도 증오도 별 것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그런 강렬해보이고 파괴적인 감정은 대개 오래가지 않으니까. 다만 분노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이 없으니까 사람들은 그런 감정을 원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는 거겠지.
내 화풀이도 그랬잖아. 3개월 정도였지. 원한이었다고 생각해. 다만 방식은 화풀이에 불과했지만.
불운함에 대한 원망? 그건 쉽지 않지. 세상은 생각보다 그럴 수 있을 만큼 지엽적인 이치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니까. 무언가를 충분히 미워하기 위해서는 전체가 아닌 부분을 보고만 있어야해. 적어도 나한테는.
그저 불운에 대한 원망보다는 날 쫓아낸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더 쉽다는거야.
솔직히 그 순간이 제대로 기억나지는 않아. 갑자기 영화에서나 보던 좀비들이 나타났고, 대피 경보가 울렸고, 타고 있던 버스의 사람들과 함께 대피했고… 꽤 자주 오며가며 봤던 노년의 분이셨지. 그 분은 걸음이 불편해서 지팡이를 짚고 계셨고, 그 뒤로 좀비가 덮쳐왔어. 감싸려다가 목덜미를 깨물렸어. 솔직히 피가 너무 많이 뿡어져 나와서, 그 순간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살아있었고, 그들은 나를 은신처에서 쫓아냈고… 그것 뿐이네.
그 다음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하늘이 새카맣다는 것이었고, 팔다리가 가끔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 혓바닥이 어느샌가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있었다는 것. 심장 박동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 난 그래도 사람을 잡아먹고 싶다는 충동은 없었어. 혹은 다른 충동에 이미 많이 익숙해진 뒤라서 그럴까? 그러니까, 너 말이야, 나츠히코. 항상 충동질 했잖아. …하하, 지금은 아닌 것처럼.
이제 내 몸이 완전히 죽었다는 걸 알 수 있어. 혼자 움직이는 시체 안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야. 마치 관 속에 누워있는 채로 옮겨지는 기분인데, 이 관은 어디로 가는걸까? 지금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6. 예외가 있긴 하다.²
7. 사람의 몸은 침목처럼 사각형이 아니다.
8. 동물의 자성(磁性)
9. 시체는 동물적 자성이 있어서 하중이 비스듬히 내린다. 그래서 관의 이음매와 접합부는 사선으로 깎아야 한다.
10. 오래된 무덤을 보면, 흙이 빗각으로 내려앉는 것을 볼 수 있다.
11. 천연 굴에서는 하중이 수직으로 쏠리므로 가운데가 내려앉는다.
12. 그런 까닭에 관을 빗각으로 만들었다.
13. 더 깔끔하다.
하지만 원래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그리움도 상실도 의문도 느끼지 못해. 애도도 슬픔도 전부 산자의 특권이야. 내가 이 관을 지고 내 죽음을 알리기 위해 길을 걸어가야할까?
미안, 나츠히코. 답은 정해져 있어. 난 가지 않으면 안돼. 누군가의 마음 속 빈 곳이 될 준비를 해야하거든. 이미 차지한 곳이 있으니까. 내가 누군가를 채워버렸다면 비우는 것 또한 도와야하잖아. 이 끔찍한 관짝을 보여주러가야해. 나는 이 안에, 존재함을 전할 수도 없는 몸뚱아리에 갇힌 채 계속 누워있을 뿐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나츠히코? 아까부터 왜 대답이 없어? 무슨 일 있어? 대답 좀…
그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꺼멓게 죽은 피가 말라붙은 시야 사이로 렌 군이 보였다. 끔찍한 경악, 틀리길 바랐던 예상이 맞았다는 슬픔, 일말의 역겨움과 각오 같은 것이 얼굴에 스쳐지나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뒤로 덮쳐오는 좀비를 향해 스스로의 팔이 날이 나간 도끼를 억세게 휘두른 것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던 것 같다. 나 자신조차도. 목이 날아가고도 한참을 꿈틀거리는 괴물에게 도끼를 박아넣은 후, 오랜만에 나 자신의 통제 하에 움직이는 몸을 비틀어 조심스럽게 인사해본다. 안녕, 이라고.
1) 윌리엄 포크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As I Lie Dying), 민음사 번역. 죽은 어머니를 묻기 위해 관을 끌고 더운 여름날 40마일이 넘는 길을 돌아가는 부조리한 여정을 담은 소설로, 97~98쪽 죽은 어머니 ‘애디’의 맏아들인 ‘캐시’의 시점 인용.
2) 위 1)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