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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서점에서의 독서는 하바타케 마키오의 오랜 취미였다. 집에 돌아가기 싫었던 고등학생은 때때로 전철역 앞의 작은 무인 서점에서 선 채로 소설을 읽었다. 순전히 독서를 즐기게 된 다음에도, 심지어는 돌아갈 집이 생긴 지금도 가끔은 편의점의 신간도서 코너 앞에 서서 작은 페이퍼백을 펼쳐보았다.

 

『체인질링』. 다 읽은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넣기 전에 하바타케 마키오는 소설의 제목을 입안에서 작게 읊조려보았다. 요정이 부모 몰래 아이를 바꿔치기 한다는 아일랜드의 설화. ‘요정’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니 얼마 정도는 진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기형아나 장애아, 혹은 닮지 않은 아이를 내치기 위해 이용한 오래된 변명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하바타케 마키오는 몸을 돌려 어느새 뒤쪽으로 다가온 사람을 바라보았다.

 

“오오우나바라 씨, 오랜만이네.”

“헤에,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 않던가? 마키오 군, 매번 혹평하면서 사실 내 소설 엄청 좋아하지? 응?”

 

글쎄. 잠시 생각하던 하바타케 마키오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

 

“오오우나바라 씨가 쓴 소설에는 관심 있는 편이지.”

“으응~?”

 

하바타케 마키오는 마침내 인정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오오우나바라 이치지쿠의 소설에 불쾌함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하바타케 마키오는 어느 정도의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사실 처음 읽은 소설, 『요키치』부터가 그랬다. 지나친 부정은 오히려 사실이라는 말이 있다. 그때는 소설을 부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하려고 했던 것 같다. 고약한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 옳지 못한 일이라고, 그들은 처단해야할 악이라고,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스스로의 인생부터가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삶은 냄새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체인질링』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인간성을 강조한다. 보고서처럼 감정 묘사를 최소한으로 배제한 절제된 문체가 그렇다. 첫번째 파트인 ‘입춘’에 등장하는 A는 읽는 사람에게 외로움조차 내보이지 않는다. 지나치게 무미건조한 글은 A가 괴리감에 허우적거리는 것조차 공감의 여지를 지워낸다. 모든 등장인물의 상황을 물화시켜 단순히 초자연적인 현상이 개입한, 인간의 삶이 아닌 이야깃거리로 전락시킨다. 당연히 기이한 소재를 사용한다고 해서 모든 이야기가 현실적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소설은 르포일 필요가 없고, 때로는 신비로운 존재가 나타나 인물의 현실을 강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체인질링』은…

 

“이 소설의 작가는 낭만적인 사람이야.”

“어라, 어째서?”

 

이 소설에는 수많은 ‘체인질링’이 나오지만, 결국 주인공은 단 한 명의 ‘사람’이니까.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것은 단지 한 명 뿐이다. 추잡한 속내와 자격지심이 가감 없이 보여지고, 다른 등장인물들을 돕고 열등감 속에 죽어가는 인물. 오히려 설화 속의 체인질링처럼 태어날 때부터 주변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였던 것은 그 인물에 대한 묘사였음에도. 

 

소설 속에 인용된 희곡 <체인질링>에서 고결하고 아름다운 귀족 여자, 베아트리스는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기 위해 하수인 드플로레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드플로레스는 그 부탁을 계기로 삼아 베아트리스를 타락시킨다. 추악한 악의 화신이 된 베아트리스는 곧 모두에게 요정이 바꿔치기한 아이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끝내는 끔찍한 말로를 맞는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체인질링’이 베아트리스이고, 줄곧 추악한 길만 걸어온 ‘사람’은 드플로레스인가? 그건 아니다. 그 희곡은 결국 위선과 타락성을 폭로하는 이야기이므로. 드플로레스는 욕망하는 베아트리스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를 자신이 있는 진창으로 추락시킨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으로 표현된 인물은 스스로의 결핍을 부끄러워하고, 이내 다른 체인질링들을 관찰하고 도와 마침내 그들과 마주하여 ‘너희와 내가 다른 것이 무엇이냐’라고 질문을 던지며 죽음을 맞는다. 하바타케 마키오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한겨울의 죽음이 오히려 낭만적이라고 느꼈다. 고독한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큰 발악이 결국 누군가를 돕는 것으로, 이해와 사랑으로 귀결되었으니까.

 

“그러니까 낭만적이라는 거야. 인간을 낭만화하고, 사랑을 낭만화하고 있으니까. 꼭 사람을 정말 싫어하면서도, 인간 세상을 떠날 수 없어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을 인생의 업으로 삼은 것처럼.”

 

하바타케 마키오는 마침내 책장에 책을 꽂고는, 파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서점을 나섰다. 

 

“이야, 소년. 또 혼잣말만 잔뜩 하고 떠나는 거야?”

“난 이 이야기가 겨울로 끝나서 좋아.”

 

아, 이건 여태까지처럼 개인적인 혼잣말이야. 나한테 겨울은 시작의 계절이거든. 한 해의 시작인 1월도 겨울이잖아? 

 

소설에 대한 감상을 깨끗하게 털어내고는, 하바타케 마키오는 밤길을 걸어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오오우나바라 이치지쿠가 따라오든 말든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하바타케 마키오는 이제 오오우나바라 이치지쿠에게 무관심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게 소설은 작가와의 대화가 아니라 혼자만의 심심풀이에 불과했으니까. 

 

그러고보면 이제 곧 한로(寒露)가 온다.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을 즐겨야겠다. 동지가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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