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몸이 미약하게 흔들리는 기차 안이었다. 보이는 것은 푸른 벨벳이 깔린 좌석에, 회색 바니시를 칠한 듯한 벽, 그리고 노란 전등이 일렬로 달려 있는 박물관에서나 사진으로 봤을 법한 옛날 기차의 객실. 사람은 거의 없고, 네 사람은 앉을 수 있을 법한 단체석에는 아키 혼자 앉아있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바라본 창밖은 밤처럼 검었고, 구름도 별도 없는 암흑 뿐이었다.
언제부터 기차를 탔더라. 기억이 안개가 낀 것처럼 모호했다. 그러나 전혀 긴장도 되지 않았고, 마치 안락한 침실에 누워있는 것처럼 마음은 편안할 뿐이었다.
이곳은 어디일까. 어쩐지 티끌 한점 없는 창밖의 어둠에 이끌려 창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표 협조 부탁드립니다.”
어느새인가 검은 모자를 쓴 차장이 아키의 뒤에 서 있었다. 모자가 슬쩍 들리자, 그 아래에는 익숙한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호쿠토 씨?”
아키가 깜짝 놀라 외치자, 기차 안의 몇 없는 사람들이 모두 아키를 바라본다. 차장은 고개를 살짝 들어 아키를 쳐다보지만, 그 시선은 아키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것과 같았다. 고개를 잠시 갸웃거리던 차장은 다시 아키에게 말한다.
“검표, 진행하겠습니다. 표를 보여주시겠습니까?”
낯선 태도에 당황했음에도, 아키는 무의식적으로 표를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나 주머니는 텅 비어있었다. 다른 주머니나, 표가 들어있을만한 곳을 탈탈 털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아키는 말없이 표를 기다리는 차장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며, 천천히 말한다.
“죄송하지만 표가 없어요.”
표를 사거나 받은 기억도 없었다. 그러니 표는 아마 없을 것이다. 왜 이런 기차 안에 있는지조차 전혀 알 수 없었으니까.
차장은 고개를 까딱이거나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는 아키의 말을 받듯 이어 말한다.
“잃어버리셨군요.”
“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고 말해도, 차장은 덤덤하게 잃어버린 것이라고 고쳐줄 뿐이었다. 그쯤에서 아키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표를 잃어버린 것으로 하자고. 아키가 인정하자, 차장은 처음으로 빙긋 웃으며 아키에게 손을 내민다.
“그렇다면 찾는 걸 함께 돕겠습니다. 따라와주십시오.”
얼떨결에 차장의 손을 잡자, 아키를 일으킨 차장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객실을 지나간다. 그대로 끌려가자 주위의 배경이 휙휙 바뀌고, 어느새 아키는 기관실과 객실 사이의 복도에 서 있었다.
“어디서 잃어버리셨는지 기억은 나십니까.”
기억이 날 리가 없었다. 아키는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 차장은 의아해하지도, 그렇다고 찾는 시늉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수레에서 커피 한 잔을 얻어와 아키에게 따뜻한 컵을 쥐어줄 뿐이었다. 잠들지 않는 게 좋을 테니까요. 그런 의미 모를 말을 덧붙이며.
곧이어 기차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 열차는 곧 은하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차창 밖으로 마치 다이아몬드가 부서져 빛이 산란하는 것처럼 눈부신 별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기차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일 테지. 아키는 그 광경에 압도되어 멍하니 별의 바다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아키를, 호쿠토의 얼굴을 한 차장이 말없이 바라보다가 입을 연다.
“은하철도는 처음이십니까?”
“은하철도요?”
은하철도라니, 그건 유명한 소설에 나오는 것 아닌가. 아키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차장은 아키가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지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은하수를 건너, 어디로든 가는 기차지요.”
“그러니까, 지구가 아니라?”
“태양계는 벗어난지 오래입니다. 은하철도는 불완전한 사차원의 환상이니까요.”
여기가, 우주란 말인가요? 어안이 벙벙한 아키의 말에 차장은 작게 미소 지으며 말할 뿐이다.
“그럼요. 여기는 태양이 없으니까 어둠 뿐이랍니다.”
…
“그러고보니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정류장에 섰던 기차가 다시 출발하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고민하느라 침묵하던 아키에게 갑작스레 차장이 묻는다.
“아, 아키라고 한답니다.”
“좋은 이름이군요.”
이미 차장과 안면이 있는 아키는, 이번에는 장난스럽게 묻는다.
“차장님은, 호쿠토라고 하죠?”
“저는 이름이 없습니다. 갖고 태어나지 못했으니까요.”
예상 외의 대답에 아키는 그만 당황하고 만다. 호쿠토가 호쿠토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 최근이라지만, 이 ‘차장’이란 사람은 임시로 부르는 이름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제복의 명찰 부분이 그냥 까맣게 비어있었다.
“저, 이름이 없으면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으니 불편하지 않습니다.”
정작 차장은 담담한 얼굴이었다. 여전히 수정가루를 흘린 것처럼 빛나는 별들이 지나가는 가운데, 차장은 전혀 감흥도 없어보였다.
“제 일은 검표 뿐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검표하는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차장의 시선이 천천히 창밖의 별에서 아키에게로 옮겨간다. 하지만 표를 잃어버린 손님은 처음이군요. 꽤 신기합니다. 차장이 슬쩍 미소를 짓는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얼굴에 표정이 풀린 아키는 장난스럽게 대꾸한다.
“정말 표를 잃어버렸을 때의 이야기지만요.”
“이런, 곤란합니다. 무임승차는. 그리고…”
아키 씨는 분명 표를 받은 적이 있을 겁니다. 차장이 확신 어린 말투로 이야기했다.
…
곧이어 안내방송은 이제부터 기차가 암흑지대로 진입한다고 안내했다.
“사실 이곳은 제 고향입니다. 저는 어둠 속에서 태어났거든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심하게 진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암흑 지대는 은하수 옆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곳입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이름도 없고, 입도 없습니다. 하지만 눈은 멀쩡하고 귀는 좋답니다. 어둠 속에 사는 이상 쓸모도 없는데 말입니다.”
입이 없다면 지금 말하고 있는 건 어떻게 하시는 건가요? 그렇게 묻고 싶었으나, 그런 의미가 아닌 것 같아서 아키는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다. 무엇보다, 말을 끊기에는 차장이 굉장히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것을 묻기로 했다.
“그럼 이곳은 빛 한점 없는 어둠 뿐인가요?”
“네, 여기는 태양이 없으니까요.”
암흑지대는 이름같이, 끝없는 어둠처럼 보였다. 아키는 창턱에 손을 올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둠뿐인 바깥은 오히려 보이지 않았고, 차장의 얼굴만이 거울처럼 반사되어 비쳐보였다. 차장이 기차 밖에 서 있는 것인지, 혹은 기차 안에 있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분명하게. 그 순간 차장이 미소를 지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바라보는 것처럼 반가움을 담아. 아키는 저도 모르게 움찔해서 입을 열었다.
“어둠이 무섭지는 않나요? 저는 어릴 때 밤이 무서웠어요.”
그래서 꼭 불을 켜야만 잠들 수 있었죠. 차장님은 안 그러셨나요?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는 사람에게 이런 것을 물어도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빛이 필요할텐데.
어둠이 무서운 이유는 거리가 가늠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도 알 수 없다.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도 구분할 수 없어 그 무엇에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끝내 외로움에 질식해 죽어가는 것이다.
차장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건 의문도 불만도 아니었다. 차장의 얼굴은 고요했고, 그건 오랜 시간 고민해왔기 때문에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답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둠 속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미약한 빛이라도…”
그리고 암흑지대가 끝났다. 창밖으로 찬란한 반짝임의 바다가 나타났다.
…
아주 오래 전에, 길 잃은 어린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애는 한 손에 헤진 인형을 들고, 낡은 잠옷을 입고 무인역에서 울고 있었다. 그 아이는 잠에 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는 길을 잃기 쉽상이니까, 눈을 감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름없는 그림자는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아이에게 주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기차표를.
사실은 빛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구한 차표였다. 하지만 아이는 집에 가야했고, 그림자는 그것을 못 본 척 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물었다.
“어둠이 무섭지 않아? 같이 가자.”
그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차표가 없으므로 같이 갈 수는 없었다. 갈 수 있는 것은 한 명 뿐이었고, 어둠에 익숙한 자신보다는 우는 아이가 가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기분이 얼굴에 드러난 것인지, 아이는 한 가지 약속을 하자고 했다.
“그럼 내가 다시 만나러올게. 외롭지 않도록.”
…
별의 바다는 눈부셨다. 다이아몬드 조각을 흩뿌려둔 것처럼, 빛의 난반사로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다. 더 이상 차장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눈앞이 번쩍거릴 정도였기 때문이다. 다만 목소리가 들려올 뿐.
“표, 찾았습니다.”
이제는 집에 갈 시간이군요. 차장은 은빛으로 빛나는 차표를 아키의 손에 쥐어주었다. 눈부신 빛 속에서 차장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약속, 지켜주어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데도, 어쩐지 상냥한 미소만은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 본 적 있던가? 분명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키는 그 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은하철도가 자신을 두고 떠나기 전에.
그러니까, 그거 아시나요? 별은 어둠 속에 있어야 더 밝게 빛날 수 있다는 것을요. 저는 이제 밤에 불을 켜두지 않아도 잘 자요. 밤에는 별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차장님은 계속 제 길잡이별이셨어요. 밤하늘의 북두성처럼.
…
눈을 뜨면 소독약 냄새가 풍겨오는 하얀 병실 안이었다. 마지막 기억은 탁자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던 것이었던가. 크게 다쳐서, 입원까지 하게 된 모양이었다. 눈을 뜬 채 광적응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손을 잡아오는 손길이 있었다.
“아키 씨.”
호쿠토였다. 괜찮으십니까?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졌다. 아키는 괜찮다며 웃어보이며 일어나려다가, 머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앓는 소리를 내며 도로 누웠다.
“호쿠토 씨, 저…”
꿈을 꿨어요. 그런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전혀 생각이 안나요.
그런가요. 나쁜 꿈은 아니었죠?
네, 굉장히 따뜻한 꿈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아키 씨가 집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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